2024년 4월, 또 한 번의 법안이 국무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바로 ‘상법개정안’ 이야기입니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는 해당 개정안에 대해 두 번째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서, 이 법안이 우리 기업과 주주의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왜 이토록 논쟁적인지 하나씩 풀어봅니다.
이사가 회사를 위한 사람? 주주를 위한 사람?
상법개정안은 이사들의 법적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습니다. 기존 상법 제382조의3에는 이사가 "법령과 정관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겨 있었는데요. 이를 "회사 및 주주를 위해"라고 수정하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럼 이렇게 바뀌면 뭐가 달라질까요?
기존에는 이사들이 '회사의 이익'이라는 추상적 개념에만 책임을 졌다면, 앞으로는 주주 개인의 이익도 고려 대상이 되는 것이죠. 특히 소액주주 입장에선 더 강력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셈이 됩니다. 회사의 결정이 주주의 가치를 침해했을 때, 주주가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거부권 행사, 왜 반복됐을까?
이 상법개정안은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대통령이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건 지난 1월이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 야당 주도로 재의결된 법안에 대해 또다시 두 번째 거부권이 행사된 겁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정부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는 사실입니다.
- 찬성 측: 금융감독원 이복현 원장
그는 “자본시장 선진화와 투자자 신뢰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강한 지지를 보냈습니다. 심지어 거부권 행사 직전까지 “직을 걸고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죠. - 반대 측: 금융위원회 김병환 위원장
그는 “외국계 펀드의 소송 남발과 경영권 위협이 우려된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결국 이 의견이 정부 입장으로 채택되면서 개정안은 다시 무산됐습니다.
주주 vs 기업, 무엇이 우선인가?
이 논쟁은 단순히 법률 문구 하나를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는 “기업 경영에서 주주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가깝습니다.
반대 측의 주장
- 외국계 투기자본이 소송을 무기로 국내 기업 경영에 개입할 수 있다.
- 이사들이 과도한 법적 책임을 의식해 보수적 경영만 하게 될 우려가 있다.
찬성 측의 주장
- 오히려 이사들이 무책임한 결정을 내릴 여지를 줄일 수 있다.
- 국제 스탠더드에 맞춰 기업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다.
해외 주요 선진국들도 이사의 책임을 ‘회사 및 주주’로 명시하고 있는 만큼,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도 이번 개정안은 중요한 신뢰 지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입법 과정과 신뢰, 그리고 공동체의 룰
이쯤에서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은 과연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
신뢰와 상식, 도덕이라는 공동체의 룰이 무너지면 법이 들어섭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될수록 법은 더 세세해지고, 논쟁은 더 복잡해지죠.
상법개정안은 단순히 주주를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기업이라는 조직이 공동체의 일부로서 책임과 신뢰를 갖추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개정안 무산'이 끝이 아니길
이번 거부권으로 상법개정안은 또 한 번 좌절됐습니다. 그러나 이 논쟁은 분명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남겼습니다. 이사의 책임, 주주의 권리, 기업의 투명성이라는 화두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다시금 되살아난 지금, 비록 법 개정은 실패했지만, 논의는 이제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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