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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사라지지 않는다

도시는 팔고, 지역은 관계 맺는다 – 브랜드가 아닌 서사 중심 설계

by 노니_Noni 2025. 5. 7.

 

도시는 빠르다.
도시는 팔 줄 안다.
도시는 자신을 상품화하는 데 익숙하다.


지하철역 하나마다 설치된 광고, 광장 곳곳의 미디어파사드,
콘텐츠로 재구성된 골목과 리브랜딩된 동네 이름.
도시는 철저히 ‘시장 언어’ 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도시가 선택한 생존 방식이다.


치열한 자본의 흐름 속에서 도시 공간은 끊임없이 상품이 되어야 하며,
더욱 매력적으로, 더욱 눈에 띄게 포장되어야 한다.
도시는 자신을 파는 데 거리낌이 없다.
도시는 팔 수 있는 정체성을 구축해 왔고,
그 정체성은 브랜드로 응축되어 재생산된다.

 

그러나 지역은 다르다.


지역은 ‘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이 쌓인 것’이다.


지역은 브랜드가 아니라 서사다.

지역을 브랜드로만 접근하면,
그 지역이 가진 고유한 시간, 관계, 맥락은
디자인된 콘셉트 아래에서 삭제된다.


예쁜 간판, 정리된 거리,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이 생겨나지만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는 사라진다.


결국, ‘지역성’은 브랜드 언어에 흡수되며
지역은 또 하나의 도시적 재현물이 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역을 브랜드로 팔기 이전에,
지역의 서사를 회복하는 것이다.

 

서사는 서서히 자란다.
한 사람의 말투, 오래된 풍경, 반복된 계절의 감각이 쌓여 만들어진다.
서사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남기고,
그 감정은 관계를 만든다.

 

지역의 서사는 관계의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그곳에 왜 이 사람이 살고 있는지,
어떤 이유로 이 공간을 유지하고 있는지,
무엇이 그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지를 말하는 일.


이 이야기가 없이 만들어진 공간은
브랜드로는 작동할 수 있어도,
기억에 남을 수 없다.

 

지금 로컬 콘텐츠의 가장 큰 문제는
‘팔기 위한 기획’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상품화 가능한 아이템, 디자인 가능한 키워드,
SNS에 올리기 좋은 서체와 색상,
이 모든 것은 도시가 쓰던 전략이다.

 

그러나 지역이 기억되기 위해서는
그 구조 안에 서사의 잔여물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관계,
함께 만든 결과물에 스며든 감정,
누구의 손길이 닿았는지 아는 물건,
이런 것들이 모여 지역을 설명하게 된다.

 

지역은 설명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느껴짐은 브랜드가 아니라 서사에서 나온다.

 

서사를 중심으로 기획한다는 것은
지역을 단지 홍보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주체로 대우한다는 의미다.


이 관점에서는 기획자의 언어보다
지역 주민의 말투가 더 중요하고,
외부 전문가의 아이디어보다
그곳의 시간 감각이 더 중심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때,
지역은 외부와의 진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마무리하며, 도시는 브랜드가 되어 팔린다.

그 방식이 도시의 리듬이라면,
지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억으로 남는다.


지역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상품이 아니라 서사,
팔리는 이름이 아니라 공유되는 이야기다.

 

지금 지역이 회복해야 할 것은
콘셉트가 아니라 관계이고,
디자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의 결이다.

 

지역은 팔지 않아도 된다.
대신,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