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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사라지지 않는다

데이터는 말한다, 지역은 하나의 패턴이 아니다

by 노니_Noni 2025. 4. 24.

 

‘인구감소지역’이라는 용어는 행정의 관점에서는 하나의 군집으로 묶이지만, 실제로 그 내부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데이터는 이 사실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준다.
2023년 기준 89개 인구감소지역은 공통적으로 인구 유출과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으나, 체류 인구, 유동 인구, 관광 소비, 지역 콘텐츠 운영 방식, 주변 연계성과 같은 항목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같은 인구 감소 지역이라도 어떤 곳은 ‘고정적인 여행 수요’를 꾸준히 확보하고 있고, 또 다른 곳은 ‘일시적인 축제 수요’에만 의존한다.
어떤 곳은 체험형 콘텐츠가 지역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고, 또 어떤 곳은 단지 소비되고 잊히는 콘텐츠만 양산하고 있다.
즉, 지역은 단일화된 위기의 공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책과 공공 프로젝트는 ‘소멸’이라는 이름 아래 지역을 균질한 공간으로 간주한다.
인구 감소율이 몇 퍼센트를 넘으면 ‘소멸 위기 지역’이고, 일정 기준 이하의 유동 인구를 가지면 ‘활성화 대상 지역’이 된다.
하지만 이 기준만으로는 지역의 실제 잠재력을 판단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강원도 정선군은 고령화가 심하고 유출률도 높지만, 특정 계절에 반복되는 관광 수요가 있으며, 지역축제의 운영 능력도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전라북도 고창군은 유동 인구는 적지만, 체류형 생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고정 수요를 가지고 있으며, 도시에서 내려온 창작자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브랜드가 형성되고 있다.

 

데이터를 보면 분명히 보인다.


어떤 지역은 ‘정서 기반 체류 수요’가 있고, 어떤 지역은 ‘이벤트 기반 유입’이 있으며, 또 어떤 지역은 ‘생활형 소비 중심 방문자’를 유도하고 있다.
이 구조는 단순히 정주 인구나 유동 수치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역을 하나의 패턴으로 묶는 순간, 기획의 방향도 뭉개진다.

진단이 정교하지 않으면 처방도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데이터를 바라보는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


단지 ‘얼마나 줄었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무엇이 유지되고 있는가’를 읽어야 한다.
인구가 줄어도 관광객이 늘 수 있고, 정주 인구가 감소해도 문화 프로그램 참여율이 높을 수 있다.
이러한 비정형적 데이터는 ‘위기의 패턴’이 아니라 ‘가능성의 결’로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결 속에 지역이 자력으로 만들어낸 구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지역’이라는 단어는 행정이 정한 경계선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관계망, 기억의 지점, 감정의 흐름에 따라 형성된 사회적 공간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 공간은 단일하지 않다.

지역 내에서도 중심지와 외곽, 젊은층의 활동 공간과 고령층의 생활권, 관광객의 이동 패턴과 주민의 일상 동선이 다르게 구성된다.
따라서 하나의 데이터셋만으로 지역을 판단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관광 체류일수를 통해 ‘관광형 지역’으로 분류된 지역이라 해도, 실제 관광의 구성 내용은 방문형일 수도 있고, 일시적 소비일 수도 있다.

 

정책은 데이터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그 해석의 층위는 보다 정성적이어야 한다.
특히 인구감소지역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있어서는 ‘정량적 근거 → 정성적 진단 → 관계 기반 실천’이라는 삼단 구조가 필요하다.


지역을 단일한 문제로 접근하면, 해결책도 일괄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지역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다양한 실천과 시도가 공존하는 하나의 관계 생태계다.
이 생태계를 이해하려면, 데이터는 출발점이 아니라 탐색의 도구여야 한다.

 

마무리하며, 지역은 결코 하나의 패턴이 아니다.
데이터가 말하는 위기는 숫자가 아니라 다르게 작동하고 있는 가능성의 시그널일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데이터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얼마나 줄었는지를 보기 전에, 무엇이 아직 남아 있는가를 먼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은 지워지는 게 아니라, 해석되지 않아서 잊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