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유형으로 분류된 지역의 풍경 – 누가 어디에 머무는가
지역은 숫자가 아니라 구조다.
단순히 인구 수, 정주 비율, 고령화 속도만으로 지역을 평가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수치가 아니라 관계의 지형, 체류의 방식, 감정의 연결, 그리고 ‘누가 어디에, 어떻게 머무르고 있는가’를 묻는 정성적 분류다.
이 관점에서 최근 분석된 ‘인구감소지역 관광 프로파일링 8개 유형’은 정책과 콘텐츠 기획자 모두에게 매우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유형 분류는 단지 관광객 수나 숙박일수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다.
지역과 방문자 사이에 작동하는 감정적 연결, 체류의 방식, 반복성 여부, 소비 패턴, 관계 확장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도출된 ‘체류 유형별 로컬 생태 지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유형별 구조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면, 단순한 방문 유도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로컬 관계를 설계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유형 1은 "관광 수요 및 체류 유입이 모두 높은 균형 지역"이다.
대표적으로 강릉시, 통영시, 제천시가 여기에 속한다.
이 지역들은 상대적으로 고정된 계절형 수요가 있고, 숙박 인프라도 구축돼 있으며, 주민과 방문자 간의 간헐적 상호작용도 존재한다.
특히 강릉은 디지털노마드, 워케이션 수요, MZ 세대의 체험형 콘텐츠 확산에 힘입어 지역과 방문자 간의 느슨하지만 반복 가능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낸 사례다.
이 지역들의 특징은 ‘많이 오는 지역’이 아니라, ‘계속 오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유형 2는 "방문자는 많지만 체류 전환이 어려운 유입 집중형 지역"이다.
광양시, 여수시, 태안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지역들은 관광 콘텐츠는 풍부하나, 대부분 일시적이며 소비 중심이다.
야경, 먹거리, SNS 콘텐츠는 넘치지만, 방문자의 머무름을 유도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는 약하다.
정서적 체류 기반이 없어 ‘사진만 찍고 가는 도시’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이 경우 체류 전환보다는 ‘기억 유도형 콘텐츠’ 혹은 ‘재방문 인센티브 구조’ 설계가 필수적이다.
유형 3은 "체류 유도는 가능하지만 절대적인 유입이 낮은 체류 기반 지역"이다.
단양군, 순창군, 인제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자연 환경이나 로컬 특화 콘텐츠는 충실하지만, 접근성과 브랜드 인지도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 지역들의 전략은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해보게 해야 하는’ 것이다.
즉, 정보 제공형 콘텐츠보다 감각 중심의 서사 설계가 중요하다.
현장에서의 경험이 SNS를 통해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도록, 감정적 언어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유도해야 한다.
유형 4는 "소수 정기 체류층에 의존하는 단절형 지역"이다.
영덕군, 고성군(강원), 태백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지역들은 일부 반복 방문자 혹은 고정 휴양 수요에 의해 유지되지만, 새로운 유입이 거의 없다.
전형적인 ‘로컬 루틴 기반의 유지 구조’이며, 이 흐름이 끊기면 단기간 내에 지역 콘텐츠의 체력이 급격히 소모될 가능성이 있다.
이 유형에서는 기존 정기 체류자와의 관계를 명확히 설계하고, 그들이 지역 내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방식의 콘텐츠 기획이 필요하다.
유형 5는 "축제, 이벤트 중심 유동성 구조를 가진 단발성 중심 지역"이다.
이천시, 해남군, 무주군 등이 대표적이다.
축제 시즌을 제외하면 유동 인구가 급감하며, 지역 콘텐츠가 시간과 장소에 매우 강하게 종속돼 있다.
이 유형에서는 ‘지역의 리듬’을 중심으로 감각을 전환시킬 수 있는 구조 설계가 관건이다.
이벤트 중심 기획에서 ‘계절 기반 일상 체험’ 구조로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유형 6은 "관광 생활인구 형성이 가능한 체류-관계 확장형 지역"이다.
완주군, 담양군, 고창군 등이 이에 속한다.
이 지역들은 물리적인 인구 유입은 적지만, 정서적 체류 기반이 강하다.
창작자, 이주자, 로컬 브랜드 운영자들의 관계형 확장이 이루어지며, 지역 내 외부자와 내부자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이 유형은 단순한 관광 정책이 아닌 로컬 생활의 리듬에 기반한 콘텐츠 전략이 필요한 곳이다.
공간 기반 콘텐츠보다 관계 기반 서사 설계가 중심이 되어야 하며, 콘텐츠 생산자 역시 외부자가 아니라 ‘내부화된 외부인’이 되어야 한다.
유형 7은 "디지털 기반 콘텐츠 생산은 활발하지만 실제 체류와의 연결이 약한 지역"이다.
강진군, 청송군, 남해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비대면 콘텐츠와 로컬 브랜드의 이미지 확산은 활발하나, 오프라인 체류 전환율은 낮다.
이 유형의 핵심은 ‘오프라인 감각 구조’의 재설계다.
디지털에서 확산되는 로컬 감성이 실제 현장에서도 유지될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UX)을 중심으로 공간 및 동선 설계를 병행해야 한다.
유형 8은 "관계성과 체류성 모두 낮은 취약군"이다.
상주, 거창, 봉화 등 일부 도시는 실질적으로 지역관광 생태계의 기반이 매우 약하다.
이 경우 관광을 중심으로 한 지역 활성화보다는 ‘관계 재설계’를 우선해야 하며,
중장기적으로 로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생활형 콘텐츠 실험’이 필요하다.
관광객이 아니라 ‘살아볼 수 있는 사람’을 설계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8개 유형은 지역이 위기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기준이 아니다.
각 지역이 처한 조건에서 어떤 방식의 체류가 가능한지, 어떤 방향으로 관계를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천 기반의 설계도다.
지역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리듬을 가진 감정적 공간들이다.
그리고 그 리듬을 읽을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연결을 설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