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는 왜 기억되지 않는가 – 참여 설계와 생활형 콘텐츠
지역에는 생각보다 축제가 많다.
봄에는 꽃축제, 여름엔 해양 페스티벌, 가을엔 수확의 장, 겨울에는 빛의 거리와 야시장.
그러나 이토록 많은 축제 중 우리가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이름은 몇이나 될까.
지역축제는 많지만, 기억에 남는 축제는 적다.
이 현상은 단지 마케팅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축제가 관객의 감정을 설계하지 못한 채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축제가 ‘볼거리’ 중심으로 구성된다.
무대를 만들고, 유명인을 초대하고, 포토존을 세운다.
플리마켓, 푸드트럭, 공연.
형식적으로는 다채롭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빠져 있다.
‘내가 이 축제에 왜 참여하고 있는가’에 대한 정서적 동기 설계다.
방문객은 많지만, 참여자는 없다.
무대를 본 관객은 있지만, 무대를 함께 만드는 사람은 없다.
이벤트에 반응하는 소비자는 있지만, 지역과 관계 맺는 사람은 적다.
결과적으로 축제는 그 자리를 떠난 뒤에는 기억되지 않는다.
소비는 했지만, 연결은 없었다.
지역축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참여 설계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참여란 단순한 체험부스 운영이나 설문조사 참여가 아니다.
지역 주민이 주체로서 등장할 수 있는 구조,
방문자가 일시적인 방문자가 아니라 기획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설계,
이 두 가지가 결합될 때 비로소 축제는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참여 구조가 필요한가.
첫째, 지역 내부와 외부가 함께 만드는 구조다.
지금까지의 축제는 기획은 외부 전문가, 운영은 대행사, 참여는 주민이라는 분리된 구조였다.
하지만 이 구조에서는 지역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으며,
축제는 지역이 아닌 외부 콘텐츠의 유입만 반복된다.
이제는 지역 주민이 콘텐츠를 제안하고,
외부 방문자가 그 콘텐츠를 함께 확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 마을에서 오랫동안 만들어온 손작업을 주제로 한 워크숍이
외지 창작자와 협업해 하나의 퍼포먼스가 되거나,
지역 아이들이 만든 동네 지도가 축제의 주요 공간이 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는 기억이 아닌 관계를 남기는 축제를 가능하게 한다.
둘째, 축제는 지역의 일상과 연결되어야 한다.
일상의 맥락과 분리된 콘텐츠는 축제가 끝난 후 지역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하지만 생활 속 동선, 공간, 사람들과 연결된 콘텐츠는
축제가 끝나도 그 감정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가령 마을 골목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상영 이후에도 그 공간이 이야기의 장소로 남고,
동네 농장에서 열린 밥상 체험은
다음 계절의 수확과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생활 기반 축제는 ‘보러 가는 축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보는 순간’이 된다.
셋째, 기록의 구조가 필요하다.
많은 축제가 단지 그날의 사진으로만 남는다.
그러나 진짜 축제는 축제가 끝난 뒤
그 기록이 지역의 ‘집단 기억’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축제를 기록하고, 공유하고, 지역민이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
사진, 영상, 에세이, 오디오 등 다양한 방식의 기록이
축제를 단지 행사가 아니라 기억의 구조물로 변모시킨다.
마무리하며, 지역축제가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 맺는 사람’이 없다.
관계가 없는 콘텐츠는 반복되지 않으며,
반복되지 않는 축제는 기억되지 않는다.
이제 지역축제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서
‘누가 이 축제의 주인공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할 수 있다면,
그 축제는 다음 해에도 기억되고,
그 기억은 다시 지역을 찾게 만든다.
기억은 감정이 남긴 증거이고,
지속 가능한 축제는 관계를 설계한 콘텐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