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이다
지방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 반복된다.
그 문장은 빠르게 위기를 알리고, 각성을 유도하고, 행동을 독려하는 효과적인 수사처럼 쓰인다.
뉴스는 지방소멸지수와 고령화율, 인구 자연감소 속도를 수치로 제시하며 "이대로 가면 2040년경엔 ○○지역이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문장에는 결정적인 오해가 포함돼 있다.
지방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사라지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그곳을 바라보는 관심의 시선이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감정의 결이며,
그 지역이 지역일 수 있게 만드는 서사의 연결 구조다.
지방은 지금도 존재한다.
텅 빈 교실이 있는 학교도 여전히 오전 8시가 되면 종소리가 울리고,
폐업한 마트 옆 작은 슈퍼에는 할머니들이 순서대로 들른다.
버스는 2시간에 한 대지만, 여전히 그 노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이곳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단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관심은 수도권에 쏠려 있고, 투자는 중앙정부의 전략 산업에 편중돼 있으며,
이슈는 서울 중심의 언어로 소화된다.
그 사이 지방은 말해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지방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지방을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라진 것은 뉴스 헤드라인이고,
끊긴 것은 정책의 예산선이며,
지워지고 있는 것은 로컬의 이름이다.
사라짐과 잊힘은 다르다.
사라짐은 물리적 사건이지만, 잊힘은 사회적 선택이다.
지방의 잊힘은 단순히 공간의 위기를 넘어,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살아 있는 존재로 대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지역소멸’이라는 단어는 너무 쉽게 반복된다.
그러나 그 말은 종종 공간의 위기만을 강조하면서 그 안의 삶과 정서는 뭉개버리는 결과를 만든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의 언어보다, 서사의 복원이다.
그곳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어떻게 계절을 통과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감각,
그리고 그 지역이 왜 지역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 목소리.
지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중앙의 언어에 의해 반복적으로 지워지고 있는 중이다.
이 잊힘의 구조 속에서,
그곳을 기억하려는 시도는 곧 존재의 복원이다.
우리가 다시 지역을 기억하려는 이유는,
그곳이 멋지기 때문도, 새로운 콘텐츠의 재료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삶이 쉽게 지워지지 않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지금도 어떤 지역에서는 매일 같은 시간 동네 아이들의 발자국이 나고,
이장이 동네 방송으로 장터 일정을 알리며,
노란 깻잎에 젓갈을 바르고 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 삶의 리듬은 뉴스에 나오지 않지만,
지역이 지역일 수 있도록 버티고 있는 리듬의 몸짓이다.
우리는 그저 사라지고 있는 숫자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기억되지 못한 채 지워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되살려야 한다.
지방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그곳을 기억하는 일을 멈췄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다시 기억하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