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책과 콘텐츠 사이 – 기획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노니_Noni 2025. 5. 12. 14:00

 

지방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정책’, 다른 하나는 ‘콘텐츠’다.


정책은 제도와 예산의 언어로 움직이고,
콘텐츠는 감정과 상상력의 언어로 작동한다.

정책은 시스템을 만들고, 콘텐츠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는 늘 어색한 거리가 존재한다.

 

정책은 효율성과 숫자를 요구하고,
콘텐츠는 관계성과 감각을 지향한다.
정책은 정해진 시기와 결과보고서로 귀결되며,
콘텐츠는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흐름으로 확장된다.


이 두 세계는 자주 충돌하거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나란히 존재한다.

이 어색한 틈을 연결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바로 ‘기획자’다.

 

기획자는 정책도 아니고, 콘텐츠도 아니다.
하지만 그 둘을 가장 가까이에서 통역하고 연결하는 사람이다.


기획자의 진짜 역할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지역에 닿을 수 있도록 감각을 설계하고,
콘텐츠가 제도 안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구조를 조율하는 일
이다.

 

많은 지역 콘텐츠가 일회성으로 끝나는 이유는
정책의 언어로는 감정을 설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콘텐츠만으로는 제도의 기반 위에 남을 수 없다.

그래서 기획자는 ‘감정이 구조화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책이 ‘관광객 유치’를 말할 때,
기획자는 단지 방문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 지역에 남아야 다시 방문으로 이어질지를 설계해야 한다.


정책이 ‘청년 유입’을 이야기할 때,
기획자는 단지 거주지 주소를 옮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곳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서사를 제공해야 한다.

 

기획자의 일은 예산을 쓰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감각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기획자의 언어는 표준화된 보고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어떻게 표현하고 연결할지를 고민하는 구조다.

 

기획자는 정책의 구조를 이해하고, 콘텐츠의 정서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둘 중 하나에만 치우친 기획은 실패한다.


정책에만 가까우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콘텐츠에만 가까우면 제도는 지속되지 않는다.


기획자는 항상 두 세계 사이의 ‘번역자’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번역은 단지 언어의 차이만이 아니라
세계관의 차이를 연결하는 일이다.


정책은 ‘할 수 있는가’를 묻지만,
콘텐츠는 ‘하고 싶은가’를 묻는다.
기획자는 그 둘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할 수 있게 만들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또한, 기획자는 ‘중개자’가 아니라 ‘해석자’다.
양쪽의 요구를 조율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역의 시간과 사람과 구조에 감정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 책임감은 숫자로 측정되지 않지만,
기획자가 사라진 뒤에도 남는 리듬으로 드러난다.

 

마무리하며,
정책과 콘텐츠는 지역을 바꾸는 두 개의 날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기획자는 속도를 조율하고,
방향을 해석하며, 관계를 지속시키는 실질적 축
이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획자는
자료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지방을 감정적으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수치를 넘어 감정을 이해하고,
제도를 넘어 기억을 설계하며,
결과를 넘어서 관계를 남긴다.

 

기획자는 현장의 언어로 정책을 설계하고,
정책의 구조로 감정을 보호하는 사람이다.

 

그 역할이야말로
‘지방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가장 조용한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