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기성과 체류성이 바꿔놓은 지역 경제의 리듬

노니_Noni 2025. 4. 30. 14:00

 

전통적인 지역경제는 주로 정주 인구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왔다.
시장, 상점, 학교, 행정서비스, 의료기관 모두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었다.

그러나 지금, 인구감소지역의 경제 구조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정주 인구만이 아니다.


단기 방문자, 주기적 체류자, 반복적 이용자, 비정주형 생활자들이 지역의 소비와 관계의 리듬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 흐름은 단지 관광 소비의 다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경제적 시간표를 바꾸는 중이다.

 

예를 들어보자.
과거에는 특정 요일에 장이 열리면, 그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 거래하고 소식을 나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장에 매주 외지에서 찾아오는 고정 방문자, 단골 캠핑족, 혹은 근처의 워케이션 체류자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마을 주민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고, 다른 시간대에 머물며, 지역의 고정 구조를 새로운 패턴으로 교란시킨다.


즉, 이들은 지역의 새로운 ‘생활 리듬’의 일부가 되고 있다.

이런 정기적 체류는 예측 가능한 수요를 만든다.


전통적 관광은 이벤트성, 계절성, 축제 중심의 소비였다면,
지금은 ‘반복적인 감정의 귀환’에 의해 만들어지는 일정한 수요가 형성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은 꼭 오는 농산물 직거래 소비자,
계절마다 고정 숙소에 머무르는 장기 여행자,
일정 주기로 지역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비정주 크리에이터.


이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관계자로 기능하며, 소비가 아니라 연결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지역의 경제 구조에 영향을 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정기성과 체류성이 지역 내부의 운영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과거에는 일주일 내내 영업하던 가게가, 이제는 주말과 특정 요일 중심으로 운영 방식을 전환한다.


지역 상점, 로컬 카페, 플리마켓, 팝업 행사 등도 비정기-정서적 흐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고정된 시간표가 아니라, 감정이 움직이는 패턴에 맞춰 리듬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정기성과 체류성은 지역 내부에서 새로운 관계 경제를 생성한다.
단골이 생기고, 이름을 기억하게 되고, 한 번의 소비가 아니라 재방문의 전제가 된다.
이는 단순한 매출의 증가가 아니라, 소비와 연결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얼마를 쓰고 갔는가’보다 ‘다음에도 올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감정의 회로가 반복될수록, 지역은 더 이상 외부 소비에만 의존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행정과 정책에도 새로운 언어를 요구한다.
그동안의 지역경제정책은 ‘사업체 수’ ‘매출액’ ‘고용률’ 같은 단기 정량지표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체류성 소비’ ‘관계성 구매’ ‘정기 방문자 비율’ 같은 정성 기반 구조지표를 만들어야 할 때다.


지방소멸이라는 말은, 단지 사람 수가 줄어서가 아니라
지역을 살아 움직이게 하던 리듬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절박한 것이다.

 

그 리듬은 경제적 수치로 표현되기 어렵다.
그러나 매주 금요일이면 열리는 작은 모임,
계절마다 열리는 로컬 장터,
반복되는 공예 워크숍에서 익숙해진 얼굴들,
이 모든 것이 지역이 ‘살아있다’는 감각을 가능하게 한다.

 

마무리하며, 정기성과 체류성은 지방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역의 경제를 단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자주 오고, 얼마나 오래 기억하고, 얼마나 다시 돌아오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지금 지역이 회복해야 할 것은 수치가 아니라 시간의 리듬이고,
그 리듬은 단골 손님처럼 조용하지만,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