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 사라지지 않는다

디지털관광주민증은 감정을 이식할 수 있는가

노니_Noni 2025. 4. 29. 14:00

 

관계는 물리적인 공간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오프라인에서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과도 친밀감을 나누고,
지리적으로 전혀 연관 없는 장소에 대해 정서적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관계 기반 지역 기획’의 논의에서도 디지털이라는 매개는 더 이상 보조 수단이 아니라,
정서적 연결을 확장하고 지속시키는 주체적 장치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이런 관점에서 등장한 것이 디지털관광주민증이다.


단기 방문자와 지역의 관계를 물리적 거주가 아닌 정서적 참여로 확대하고자 했던 실험.
정주하지 않아도 ‘이 지역의 생활자’처럼 정보를 받아보고,

소식을 공유하며, 혜택을 누리고, 때때로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시스템은

관계형 관광이 가진 최대의 딜레마—물리적 거리감—을 기술로 극복할 수 있을지를 시험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디지털관광주민증은 기본적으로 지역 기반 콘텐츠 플랫폼과 연동된다.
관광 안내가 아닌 ‘지역 일상과 기획의 흐름’을 전달하는 채널로 기능하며,
기존 주민과 비정기 체류자, 일시 방문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한다.


또한, 반복 방문자와 재방문 가능성이 높은 사용자에게
디지털을 통해 지역과 연결되는 '기억의 고리'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이 시스템은 실제로 ‘감정의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단순히 정보 접근의 문제를 넘어, 사용자가 해당 지역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는가?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긍정적인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지속적으로 특정 지역의 소식을 받아보고,
새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등록되면 미리 신청하고,
작은 이벤트에 온라인으로도 반응하면서
사용자들은 ‘그곳에 직접 있지 않아도’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누리게 된다.

 

특히 강릉, 통영, 완주와 같은 로컬 콘텐츠 중심 지역에서는
디지털 주민증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기능이 구축되었고,
이 구조를 통해 오프라인으로 다시 연결되는 사용자 그룹이 형성되었다.


관계가 ‘끊기는 것이 아니라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스템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리듬을 조율하는 장치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구조에는 분명한 한계도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지속성’이다.


디지털 관계는 일정한 긴장과 피드백이 없다면 쉽게 망각된다.
알림은 무시되고, 채널은 침묵하며, 한때는 ‘주민’이라 여겼던 감정은 빠르게 사라진다.
즉, 디지털관광주민증은 관계를 맺게 할 수는 있어도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또한, 이 시스템이 관계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역 혜택을 알리는 도구로만 작동할 경우,
오히려 ‘콘텐츠 소비자’만을 양산하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지역은 다시 플랫폼에 소비되는 브랜드가 되고,
사용자는 다시 로컬을 피드처럼 넘기는 대상 공간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디지털관광주민증의 구조는 기능 중심이 아니라 서사 중심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단순한 알림이 아닌 이야기를 전달하고,
정보가 아니라 맥락을 제공하며,
혜택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주는 구조.


즉, 플랫폼이 아니라 디지털 커뮤니티의 감각으로 작동해야 한다.

관계의 핵심은 반복과 리듬이다.


지역과 사용자가 연결되는 시간의 간격이 리듬을 잃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하고,
그 리듬 속에서 사람은 감정을 이식받는다.
그 이식은 기술이 아니라 기획의 감수성과 태도에서 비롯된다.

 

마무리하며, 디지털관광주민증은 단지 정보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임계점을 넘기 위한 감정적 실험이며,
지방이 더 이상 물리적 거리로만 존재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의 포털이다.


중요한 건, 이 시스템이 ‘지방소멸’을 막는 도구가 되기보다,
지역을 기억하는 감각을 확장하는 장치로 설계되느냐의 여부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않아도,

정서적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담아낸 기술이 디지털관광주민증이고,
그 가능성이 작동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능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