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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지역을 기억할 것인가 – 유입보다 잔존의 전략

노니_Noni 2025. 5. 8. 14:00

 

지역은 언제 사라지는가.
사람이 떠날 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때 사라진다.


사람의 수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기억의 총량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장소는 지리적으로는 존재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이미 소멸한 것과 같다.

 

그래서 지금 지역이 물어야 할 질문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가’가 아니라
‘누가 이 지역을 기억하고 있는가’이다.

 

그동안의 지역정책은 유입 중심이었다.
외부 방문자 수, 유동 인구, 신규 전입자 비율 등
수치 기반의 유입 지표가 성과의 기준이 되었고,
많은 지역이 ‘얼마나 데려올 것인가’를 고민해왔다.


하지만 이 구조는 결국 한계를 드러냈다.
단기 체험자는 기억에 남지 않고,
관광객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정착을 유도해도 감정적 연결이 없는 관계는 유지되지 않는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유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잔존,

즉 ‘머무는 사람’보다 ‘남는 기억’을 만드는 일이다.

 

잔존 전략은 물리적인 인구 유지 정책이 아니다.
이는 ‘정서적 지속성’을 중심에 둔 지역 관계 설계다.


단순히 이사 오는 사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지역을 알고 있는 사람,
한 번이라도 살아본 감각을 가진 사람,
자신의 기억 안에 이 장소를 넣어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역은 어떻게 기억될 수 있는가.
그 첫 번째 조건은 감정이 남는 경험 설계다.


단순한 정보 제공, 볼거리 중심, 체험 스케줄은
사용자에게 일회적 기억만을 남긴다.


반면, 관계가 작동한 경험은 오래 남는다.
지역민과 나눈 대화, 함께 만든 무언가,
직접 손으로 남긴 흔적은
그 지역을 단지 ‘방문한 곳’이 아닌
‘나의 일부분이 있는 장소’로 만든다.

 

두 번째는 기억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구조다.


많은 지역 콘텐츠는 현장성에 의존한다.

그러나 축제가 끝나고, 공간이 닫히고 나면
그 기억은 점점 휘발된다.


따라서 지역은 ‘디지털 기억 구조’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사진, 영상, 메일, 뉴스레터, 커뮤니티 채널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감정을 되살릴 수 있어야 한다.


기억은 기록될 때 유지되며,
기록은 반복될 때 관계로 확장된다.

세 번째는 잔존 인구와의 감정적 관계 설계다.


외부인을 데려오기 이전에,
이미 그 지역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얼마나 강한 신뢰와 애착을 쌓을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이들은 외부인에게 지역을 설명해줄 수 있는 존재이며,
‘지역의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구조다.


그들의 말, 표정, 태도, 일상이
방문자의 기억 안에 지역을 새기는 주된 장치가 된다.

 

잔존 전략의 핵심은
‘남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남고 싶게 만드는 감정은 강요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서적으로 설계된 경험과,
관계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의 반복을 통해 형성된다.

 

마무리하며, 지역은 얼마나 데려올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남아줄 것인가,
누가 기억해줄 것인가,
누가 이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말해줄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지방은 사람이 없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지 않아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의 생존 전략은 숫자가 아니라
관계와 감정의 잔존 설계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