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이라는 문장이 감추는 것들
지방 소멸이라는 말은 자극적이다. 한 문장만으로도 위기의식이 생성된다.
기자는 그 문장을 헤드라인에 올리고, 정책가는 그 문장을 예산 확보의 논거로 사용하며, 강연자는 청중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도입부로 삼는다.
지방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는 일은 간편하고 효과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 효과 속에, 아주 많은 것들이 삭제된다.
‘소멸’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지워버리는 것은 ‘사람’이다.
통계 수치 뒤에 있는 개별의 삶, 숫자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 경험, 그리고 지역을 유지하는 관계의 역사는 어느 순간 하나의 줄어드는 그래프로만 치환된다.
더 심각한 것은 ‘지방 소멸’이라는 담론이 반복되며, 오히려 그 담론 자체가 지방을 소외시키는 구조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숫자로 규정된 위기는 삶의 서사를 압도하고, 정책은 문제를 ‘복구’의 대상이 아닌 ‘회복 불가능한 소멸 예정지’로 명명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지방은 존재가 아니라 ‘손실 항목’이 된다.
소멸이라는 개념은 강력하지만 불완전하다.
그것은 어떤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미래를 경고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가치와 감각을 설명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방에는 누군가가 살고 있다.
학교 종이 울리고, 택배가 도착하고, 모내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삶들은 결코 ‘소멸 예정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더디지만 일관된 리듬으로 지역을 지탱한다.
그러나 ‘소멸’이라는 언어는 그들의 일상에 대한 존중을 지우고, 행정적 판단의 도구로 지역을 분류한다.
어떤 지역은 ‘소멸 고위험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어떤 지역은 ‘정주 인구 확산 우선 지역’으로 목록화된다.
그리고 이 구분은 곧 예산과 사업의 배분 기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지방은 누가 사는 곳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분류된 공간인가가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방 소멸’이라는 말은 두 가지를 감춘다.
첫째, 그것은 ‘정주’를 기준으로만 지역의 존재를 정의한다.
실제로 지역에는 정주하지 않지만 정서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 매년 그곳을 찾는 계절적 방문자, 원격으로 업무를 이어가며 주기적으로 머무는 디지털 유목민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행정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지역의 정체성과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인구다.
이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관광생활인구’다.
지방이 소멸하고 있다는 진단은 이러한 관계 기반 인구를 완전히 지워버린다.
그것은 현재 지역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형태가 다변화되고 있음을 무시하고, 오직 주소지 기반의 전통적 인구만을 기준으로 지역의 생존 여부를 결정한다.
둘째, ‘지방 소멸’이라는 말은 지역이 이미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지를 가린다.
많은 인구감소지역은 체류형 콘텐츠를 통해 외부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설계하고 있고, 일부 지역은 디지털관광주민증과 같은 실험을 통해 방문자의 반복적 관계 형성을 시도하고 있다.
통영, 강릉, 제천 같은 도시는 주말마다 도시 인구의 일부를 자신들의 리듬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고, 정선이나 담양 같은 곳은 자연 기반의 일상체험 구조를 통해 ‘살아보는 감각’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들의 시도는 ‘소멸’이라는 전제 위에 놓일 경우, 단지 ‘소멸을 늦추는 미약한 노력’으로만 해석된다.
그것은 지역의 실천을 평가절하하는 방식이며, 동시에 지역의 가능성을 선형적 위기 담론 속에 가두는 폭력적 해석이기도 하다.
‘소멸’이라는 말은 설명이 아니라 규정이다.
그 규정이 반복될수록 지방은 자율적으로 자신을 설계하고 정의할 권리를 잃는다.
‘소멸 예정지’라는 프레임 속에서 어떤 기획도 희망보다는 생존의 논리 안에서 해석된다.
로컬 콘텐츠는 브랜딩이 아니라 위기 대응 수단이 되고, 로컬 창업은 경제활동이 아니라 ‘지역 인프라 확충’으로 치환된다.
그렇게 지방은 다시 객체화된다. 존재가 아니라 대상, 주체가 아니라 문제의 위치로.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지방이 사라지고 있는가, 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잊히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지역을 다시 구성할 수 있는가를 묻는 방식으로.
지방은 숫자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관계의 구조이고, 기억의 축적이며, 감정이 흘러가는 하나의 리듬이다.
‘소멸’이라는 말이 강한 언어라면, 우리는 그 언어를 부드럽게 풀어줄 서사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투를 기록하고, 공간의 표정을 읽고, 관계의 구조를 상상해보는 것. 그것이 지방을 다시 말하는 방식이다.
‘지방 소멸’이라는 문장은 지역의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그 문장은 현재의 감각을 무시한 채 예측된 불행을 반복하는 하나의 정치적 언술일 뿐이다.
지역은 지금도 누군가의 일상이고, 관계의 무대이며, 삶이 통과하는 통로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다만 그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라졌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소멸을 경고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를 관찰하고 다시 서술하는 일이다.